'요컨대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뀌기 전에는 힘들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어요'에 해당하는 글 1건


즘처럼 하루에도 열두 번씩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계절이 되면 이런저런 매체와 인터뷰할 일이 제법 생기는데 그때마다 빠짐없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런 거다. “어째서 한국의 추리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일까요?” “왜 한국 서점에서는 일본 추리소설이 인기일까요?” 



글쎄, 어째서일까.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나 같은 인간이 “그건 말이죠” 하고 간단한 식사로 대답할 성질의 물음이 아니다. 게다가 애써 대답해 봤자 공염불이거나, 돌아오는 건 ‘쯧쯧, 아직도 그런 이분법(순문학/장르문학)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같은 타박이기 십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이런 질문에는 아는 척을 하기보다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복지부동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듣지 않는 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추리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십중팔구 이 같은 질문에 대해 한두 가지쯤 머릿속을 스치는 ‘나름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답변’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추리소설이란 무엇인가’ 같은 정의는 물론 ‘해외 추리소설의 발전 양상’을 하나부터 열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상태에서 내린 답변과는 다소 달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경험적 측면에서 한 답변과 태정태세문단세적 지식을 토대로 삼아 한 답변이 다르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봤자 한 끗 차이일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문제의식의 뿌리는 비슷할 테니까.  


2008년 무렵에 있었던 사건 얘기를 해보자.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먼저 보도했던 걸로 기억한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한국 문단의 소위 대표 작가들을 일별할 수 있는 <한국문학선집-소설2>을 발간했는데, 어느 문학평론가가 ‘김성동’과 ‘김성종’을 동일인으로 착각해 버린 해제를 그 책에 실었다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기사를 읽고 나도 책을 구입해 보았다. 해제는 총 세 페이지에 걸쳐 수록되어 있었다. 그중 “김성동은 『만다라』 발표 이후 생계를 위해 문학의 순수성과 관련된 본격 문학에 집중하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창작하거나 신문에 역사소설을 연재하였다”라는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김성동 선생은 다음처럼 답변했다고 한다. “이 사람은 단 한 편도 추리소설을 쓴 바 없으며 통속적 역사소설 또한 쓴 바 없습니다. 아마도 김성종이라는 추리소설가와 나 김성동을 착각하여 한 말인 듯한데 김성종과 김성동을 혼동한다는 게 이른바 평론가로서 말이 됩니까?”


이는 명백히 해당 평론가와 출판사의 잘못이다. 때문에 김성동 선생이 법적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했을 때 출판사 쪽에서 공식적인 사과문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문단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김성동 선생은 ‘화풀이하듯’ 이 내용을 <발괄하는 앵벌이>라는 소설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김성동 선생의 화가 풀렸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그는 발언할 기회가 있었고 그 발언은 기사화되었으며 출판사로부터 사과도 받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의아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렇다면 김성종 선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해당 평론가의 글 가운데 “생계를 위해 문학의 순수성과 관련된 본격 문학에 집중하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창작하거나 신문에 역사소설을 연재하였다”라고 “평가절하된(이건 <오마이뉴스>의 표현)” 대목은 김성동 선생뿐만 아니라 김성종 선생 입장에서 볼 때도 역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상황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와 관련한 보도나 논평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누구 하나 그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나서지도 않았다. 나는 이것이 오늘 한국 추리소설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2008년에 일어난 일이지만 지금 다시 이름을 바꿔 다른 추리소설가에게 일어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 이쯤에서 최근 출판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두 가지 발언을 살펴보자.


① 이들의 부진이 ‘자업자득’이란 비판도 있다.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장은 “국내 메이저 출판사들이 돈이 되는 해외 작품을 들여오는 데 열중할 뿐 정작 국내 작가는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며 “신인을 발굴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키워 출판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다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데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② 신인작가를 발굴해 고액의 문학상 당선료를 지불하면서 론칭했고 일간지 기자들이 비좁은 지면 쪼개 열심히 기사도 써주고 했는데 시장에서는 그냥 외면해 버립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말이 좋아 신인작가 발굴과 양성이지 도대체 그에 따른 비용과 효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출판사의 그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요? 지금 독자들이 국내 작가의 콘텐츠에만 만족할 수 있나요? 


위에서 ①은 ‘빅4 규모의 출판사’들이 부진한 이유를 분석한 지난 달 10일자 <동아일보> 기사이고, ②는 ①에 대한 일종의 하소연으로 ‘빅4 규모의 출판사’ 본부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아마도 이 글을 마주할 독자들은 대부분 ①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범위를 추리소설에 한정하여 내 개인적 의견을 말해 보자면 ①은 어디까지나 이상론이고 ②가 현실적이라는 측면에서 더 와닿는다. 지금처럼 허약한 출판시장에서 어떠한 비평적 권위나 외부적 도움 없이 순수하게 독자들의 선택만으로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들어지기란 불가능하다(②에서 보듯 독자들이 선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비평적 담론을 만들고 거액의 상금을 지급하여 한 방에 뭔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 역시 이제껏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처럼 앞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유소년 축구나 국내 리그에 대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비전 없이 무턱대고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바라는 심리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육성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가능하겠다. 아니, ‘나는 추리소설가가 아니다, 다만 추리적 기법을 차용했을 뿐’이라는 분위기가 얼마든지 용납되는 한 그것은 어렵다고 본다. 애당초 장르를 구분하는 일 자체를 마땅치 않아 하는 이런 풍조 속에서라면 차라리 질문을 바꾸는 편이 낫다. “왜 한국의 추리소설이 발전해야 하는가?”, “왜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 스티븐 킹이 필요한가?” 


어차피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 있는데 굳이 여기에 한 명 더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러한 투자에 얼마만큼의 효용성이 있을까. 추리소설(장르문학)은 그냥 추리소설을 잘 쓰는 나라에서 들여오면 되지 않을까. 차라리 한국은 한국이 잘 하는 순문학(본격문학)을 지금처럼 열심히 육성하여 내수는 물론 수출에도 기여하게 만드는 것이 정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볼 때 가성비가 더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4.07.29ㅣ주간경향 1086호 [김홍민의 문화의 발견]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407211741351&pt=nv



덧) 화려한 예복을 거부하고 수수한 옷차림에 평범한 십자가를 애용, 경호 인력마저 최소화하며 ‘서민 교황’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맞아, 책을 팔아 먹고사는 나에게도 작은 바람이 생겼다. 짧은 일정 탓에 많은 곳을 둘러보기는 힘들겠지만 나는 그가 약속된 장소로 향하다가 문득 눈에 띈 동네 서점에 들렀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직접 책을 한 권 구입하며 이렇게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책이든 읽어서 손해볼 건 없습니다.” 



WRITTEN BY
_호야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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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내 출판사의 문제라기 보다는 문단의 문제가 더 깊지 않나 싶습니다.

    동업자 정신없이 자기들끼리 순문학/장르문학 나눠서 무슨 카스트제도도 아니고 계급처럼 차별해버리는데 어디가서 추리소설 작가라고 어깨 힘이라도 주겠습니까? 아무리 곁눈으로 쳐다봐도 한국 문단은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있습니다. 독자도 출판사도 안보이고 자기들끼리 선생님, 형님 하면서 말이죠... 그들의 룰에서 조금만 벗어나 있으면 근본없는 것이 되는거 아닙니까?

    한국문단에 국문과나 문창과 나와서 정식 데뷔하고 순문학써서 한국인의 한의 정서를 표현하지 않는 이상 대접받는 작가가 어디 있습니까?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는 대체로 문단의 외면을 받는 변두리 취급이거나 저급하게 취급하는 것이 작가들의 조직적 현실인데 출판사가 어떠니 투자가 어떠니 신인발굴이 어떠니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슨 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되면 궁금해서 찾아 읽어보는데 그 나름대로 좋지만 대부분 죽는 소리 일색입니다. 사는게 심각하고 인생이 베베꼬인 인물들의 한을 어둡고 무겁고 답답하게 풀어내는 작품들이 상을 타죠.

    그에 반해 일본작가들은 훨씬 가볍게 풀어냅니다. 아니 가볍니 무섭니 할게 없는게 워낙 다양하지 않습니까? 많이 팔리기도 하고 상도 받고...

    누가 누구를 탓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시장이 좁고 남의 눈치를 많이보는 국내 정서상 이미 평가절하되어 있는 추리소설이나 SF를 잘 안읽죠. 학생들 추리소설 읽으면 돈도 안되고 취업에 도움도 안되는 쓸데없는 짓하고 있다고 혼내는게 현실 아닙니까?

    그리 혼내는 당사자는 얼마나 인생을 의미있게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아이를 또 이런 교육에 맡겨야 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그나저나 구형의 황야는 샀습니다.... 르지라시가 두개 와서 흡족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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