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X'에 해당하는 글 1건


마음산책 편집자, 은행나무 편집자와는 지금까지 몇 차례인가 함께 여행을 가곤 했다. 종종 어울리다가 “이번 연휴에 시간 어때” 하는 얘기가 나오면 후다닥 짐을 싸서 다녀온다. 책을 만들어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해외에 나가면 누가 먼저 제안하지 않아도 들리는 곳은 뻔하다. 서점이다. ‘이 나라에서는 책을 어떻게 만들고 팔리는가’ 하는 것은 늘 궁금한 대목이니까. 그래서 우리끼리는 이 모임을 ‘떼거리 서점 유랑단’이라고 부른다.


작년 가을 무렵에는 일본에 다녀왔다. 그때 교토의 어느 서점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광경을 목도했다. 매대 하나에 같은 책이 여러 권 쌓여 있었는데 책 표지에 제목 대신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 책을 어떻게 추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다’, ‘매력적이다’라고 느끼게 할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책 제목을 숨기고 팔기로 했습니다.”



이 책의 이름은 ‘문고X’로, 책 전체를 전면 띠지로 가리고 랩핑하여 책에 대해 알 수 없게 만든 채로 판매하는 문고본이다.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힌트라고는 (1) 500페이지가 넘는다는 것, (2) 가격이 810엔이라는 점, (3) 띠지에 쓰인 소개 문구뿐이었다. 기획자는 ‘사와야 서점’ 페잔점의 직원인 나가에 다카시 씨였다. 그는 무크지 <이 문고본이 대단하다 2016>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한 바 있다.


“2016년 7월 21일, 맨 처음에 60권을 매대에 진열했다. 솔직히 말해 팔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30권이 팔릴 때까지는 매대에서 치우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자신이 없었다. 표지도 제목도 알 수 없는데다 문고본치고는 810엔이나 하는 살짝 비싼 책이다. 이 60권이, 설마 5일 만에 매진될 거라고는, 게다가 똑같은 형태로 전국에 퍼질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책은 현재 ‘문고X’라 불리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모리오카 경제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사와야 서점의 페잔점에서 이 책의 판매는 한 달에 두세 권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문고X’로 이름 붙이자 불과 일주일 만에 60부가 팔렸다. 이에 페잔점의 점장인 다구치 씨는 잘 알고 지내는 다른 서점들에게도 이 같은 상황을 알렸고 곧 전국 650개 이상의 서점들로 ‘문고X’ 기획이 퍼져 나간다. 이 대목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이 책을 구입한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표지가 보이는 상태였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테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어 정말로 좋았다”는 소감이 많았다. 게다가 독자들은 ‘SNS에 제목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문고X 기획자의 당부를 흘려듣지 않았다. 책을 구입한 독자가 “나는 ‘문고X’뿐만 아니라 ‘문고X’ 기획의 취지까지 함께 구매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문고X’는 전국적으로 11만 부가 팔렸다.



한편 ‘떼거리 서점 유랑단’과 함께 올 1월에는 영국에 다녀왔다. 옥스퍼드의 ‘블랙 웰’ 서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매대 한켠에서 이런 문구와 마주할 수 있었다. “A NOVEL SURPRISE!” 거기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등 각 나라에서 출간된 소설 중 블랙 웰 서점의 스태프들이 엄선한 책이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가려진 채 진열’되어 있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출간 국가와 가격뿐이었다.


알아보니 유럽의 여러 서점들에서는 ‘블라인드 데이트 위드 어 북(Blind Date with a Book)’이라는 제목으로, 봉인된 포장지 앞면에 소설의 첫 문장만 적어둔다든가, ‘기괴함’, ‘유머러스함’, ‘달콤함’ 같은 키워드만 인쇄해 놓는 등, 서점의 특색에 맞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들 이벤트에는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노력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문고X’와 ‘서프라이즈 노벨’을 목도하며 ‘만약 이런 이벤트를 출판사에서 진행한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 이런 이벤트를 시행한다면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어떤 결과가 초래되든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당연하기 그지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의 2017년 출간 예정작 가운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책’을 선택하여 동시에 출간해 보자는 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내친김에 세 권의 책을 몽땅 구입하는 독자들을 위한 부록을 만들어 보자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서점에서 얻은 아이디어니까 서점에 관한 무언가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구체화시켰더니 <내 맘대로 세계서점X>(떼거리 서점 유랑단 지음)라는 제목의 대충 철저히 만든 비매품으로 귀결되었다. 함께 다닌 서점 가운데 뭔가 스토리가 있거나 특징적이거나 ‘나중에 내가 서점을 차린다면 한번 써먹어봐야지’ 싶은 여덟 군데를 골랐다.



하지만 두 개 출판사도 아니고 세 개나 되는 출판사가 막상 컨셉을 잡고 실무를 진행해 나가는 것은, 생색을 내자는 건 아니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잔치국수 재료로 해산물 파스타를 만드는 것 같았다고 할까(저렴한 비유). 한데 이 과정이 또, 뜻밖에 재밌는 거다. “이렇게 하는 게 더 흥미로울 것 같아”, “아니지, 저렇게 하는 게 더 낫지”라며 다들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고 열을 올리는 동안 주옥같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매일 화상통화...까지는 아니지만 회의+회의를 거듭하며 두 달에 걸쳐 준비했다.


이제 남은 걱정은 ‘우리끼리만 재밌으면 어떡하나’라는 것 정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담배 하나쯤, 아니 이런 이벤트 한 번쯤은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글쎄, 어떨지. 모쪼록 함께 즐겨 주시면 좋겠다.


마포 김 사장 드림. 


간단요약)


1. 마음산책, 북스피어, 은행나무가 제목과 저자를 가리고 신간을 파는 이벤트를 합니다. 이름 하여 ‘개봉열독 이벤트!’


2. 각 도서는 ‘마음산책X’, ‘북스피어X’, ‘은행나무X’라는 이름으로 (1) 가격 (2) 페이지 (3) 관련 키워드만 공개해요.


3. 예약판매는 4월 1일~4월 24일까지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에서.


4. 예약판매 이후, 4월 25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물론 이때도 제목과 저자를 숨기고 팔죠.


5. 그러니까 예약판매로 일찌감치 책을 받은 형제자매님들께서는 5월 16일까지 제목을 공개하지 말아주세요. 플리즈.


6. 제목과 저자는 5월 16일 자정에 공개합니다.


교보문고_https://goo.gl/kFTW3f

알라딘_https://goo.gl/RRTPRH

예스24_https://goo.gl/xdIYo8

인터파크_https://goo.gl/yC63b5


덧) 마포 김 사장의 지령 41호 발송했습니다. 42호부터 받아보실 형제자매님들은 아래 주소로 가서 메일 주소 남겨주시길. http://booksfear.com/519





WRITTEN BY
_호야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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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단된 자 2017.04.01 04:35 신고
    평창 피겨 출전권이 걸린 세계선수권에서
    제가 예뻐하는 선수가 우리나라 출전권을 2장이나! 따내서 지금 몹시 흥분한 상태인데
    저 책 포장을 본 순간 더더더 흥분...
    으아, 너무 예쁘잖아요! 제가 이쁜 거에 잘 혹하지 않는데...

    물론 부록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없었다고는 못하지만
    속에 대체 뭣이 들어쓰까 싶은 저 포장 사진을 본 순간
    이미 저를 비롯한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앞다퉈 주문 버튼을 눌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흥분 상태여서 말이 주절주절;;;)
    • 아아, 날카로우심.
      제가 해외 서점들에서 하는 이벤트를 보니가
      대부분 포장이 허술하거나 별로라는 느낌이어서
      당 이벤트에서는 포장에 공을 들였어요.
      5월에는 기념일이 많아서 선물하는 데도
      좀 써먹어주십사 하는 바람을 담아서ㅎㅎ.
  2. 복면서왕???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이러거나 저래도 사서 읽고, 도통 안 읽는 사람들은 저러거나 이래도 관심이 없으니... 또 새책이 나왔네요. 서점 가서 만지고 싶어라.
    • 그렇긴 하죠ㅎ.
      그렇더라도 이 책은,
      도통 안 읽는 형제자매님들도 소환해 보자,
      그런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게임적 도서구매의 탄생이랄까(막 갖다붙임).
  3. 언제적... 스컬리 2017.04.01 09:42 신고
    아아아... 마포 김사장님이 만우절 이벤트를 예고했을때.. 또 참여못하는 건가 했는데!
    어제 메일이 왔다는 스마트폰 안내를 보고 오늘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메일을 확인해보고
    몹시 흥분된 마음으로 알라딘으로 휘리릭 넘어가 묻고 따지지도 않고 세 권 다 주문했어요.
    하!하!하!

    각 서점 MD들의 추천사만으로도 무슨 책일지 몹씨도 궁금해집니다
    4월 26일까지 어떻게 기다린대!!!!

    음.... 추측컨데... 북스피어와 은행나무는... 추리 스릴러 쪽일 거구.. 북스피어는 아무래도 일본 쪽... 은행나무는... 서구... 음..... 북유럽쪽????

    비슷한 류일 거 같지만.. 왠지 마음산책쪽은 추리 쪽은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영미 소설쪽.. 일반 성장 소설????

    아아아아아.. 설레라..
    4월 26일에 책 받아도 5월 16일까지 포장 안풀고 기다릴까봐요. ㅋㅋㅋㅋㅋ

    • 간만에 제 몫을 다한 '지령'이군요.
      일단 구매하시고 잊어버리시면
      막상 책이 도착했을 때 기쁨 두 배일 겁니다.
      부록도 세계서점 구경적 차원에서
      상당히 쓸모가 있을 거고요^^.
      잘 부탁드려요.
  4. 하필 날짜가 그 날이라서.. 이거 냄새가 나기도 하는데....
    과연...
    이벤트는 재미있는데.....
  5. 북스피어 책은 거의 확신을 해요. 각설탕?하고 관계가 있을거예요.
  6. 모두 주문완료. 재밌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처음으로 마음산책 출판사의 책을 사 봅니다.
    개인사정상 기왕이면 26일날 퇴근직전까지 책이 당도하길 간절하게 빌어보며.... ㅠ_ㅠ
  7. 와우 이렇게 재밌는 일은 여러 사람에게 알려 모두 즐거워야 하는데..
    책 주문하고 갑니다~
  8. 재미있네요 제목 가리고 팔기... 무슨 책인지 알고 싶어서 더 많은 사람이 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세 출판사가 함께 하는 것에 뜻이 있겠습니다 다른 때보다 책이 더 많이 팔렸으면 좋겠네요


    희선
  9. 비밀댓글입니다
  10. ....샀습니다.......
    복권사는 느낌이랄까요?!
    • 한 권은 봉투 뜯어서 읽으시고
      한 권은 소장용으로 남겨두세요.
      레어템이 될 테니까요.
      이것이야말로 훗날 복권이 될 것!(이런다)
  11. 작당하는 세 출판사와 부록이 다 맘에 드니 不亦買乎아!

    근데 곧 이사를 가야 해서 예약주문을 늦게 할지도 모르는데 (새 주소지로 받아야 하니까요)
    부록이 품절되지 않을까 조마조마.
    혹시 품절되면 김사장님께 내놓으라 떼를 쓸 예정이니 한 권쯤 골방에 찡박아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

    제 다음 목표는 은행나무로 해야겠는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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