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의 흥행과 함께 원작소설을 쓴 작가 테드 창도 화제인 모양이다. 열두 살 때 아이작 아시모프와 아서 클라크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로의 꿈을 키운 그는, <바빌론의 탑>으로 역대 최연소 네뷸러 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SF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바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셋, 그 후 20여 년간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함께 “네 개의 네뷸러 상, 네 개의 휴고 상, 네 개의 로커스 상”을 받는다. 흥미로운 건 그가 지금껏 발표한 작품이 중단편 15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게 되기 전까진 쓰지 않는다


과작에다 중단편뿐임에도 그는 SF계에서 내로라하는 상을 휩쓸고 SF독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어째서일까? 테드 창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창작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오랫동안 생각해 본 뒤 사색한 내용이나 아이디어를 적는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게 되기 전까진 글을 쓰지 않는다.”


작품을 쓰기 전 사전준비 작업도 철저한데, 가령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발표한 후에 현역 언어학자로부터 언어학에 대한 묘사가 ‘흠 잡을 데 없다’는 극찬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둘,

쓰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만 쓰고 없을 때는 쓰지 않는다


테드 창은 하나의 작품 이후 그다음 작품까지의 간격이 길다. 어쩌면 그가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본업이 따로 있는 파트타임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200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뤄진 인터뷰에서 테드 창은 자신이 왜 글을 쓰는가,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극히 적습니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하려는 것이고, 그 이야기 방식을 숙련되게 익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결코 멈추지 않고 진행중인 과정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작가라는 존재지요.”


셋,

독자를 생각하며 쓴다


테드 창은 만약 프로 작가의 기준이 ‘소설을 써서 생계를 이어야 한다’고 정의한다면 자신은 프로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SF작가로서 갖고 있는 신념은 어느 전업 작가보다 투철하다. 작가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달라는 질문에 그는 작가로서의 신념을 내비쳤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세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알기 쉽게 독자에게 표현하십시오. 설령 그런 사람들이 조금밖에 없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념을 가지고 밀어 붙일 것. 그렇게 하면 언젠가 자신의 독자와 만나게 될 겁니다.”


덧)

테드 창은 "내가 장편을 쓰지 않는 이유는 지금껏 떠올린 어떤 아이디어도 장편 소설이 될 만큼 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랬던 그가 2010년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 중 가장 긴, 영문 3만 글자 이상의 중편 소설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I)을 가진 가상 애완동물을 다룬 이야기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바로 그것이다. 



단행본으로 발간된 이 작품은 여론과 독자의 극찬 속에 로커스 상과 휴고 상을 수상했으며,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가격은 8,800원. 영화 <컨택트>를 보고 작가에게 관심이 생기셨다면 한번 거들떠봐 주셔도 좋아요...


이상,

영화 보고 필 받아서 물타기 한번 해볼까 하고 끼적여 본

마포 김 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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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20 19:5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서울한량 2017.02.22 23:2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컨택트의 원작 작가 이름을 듣고서,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누구였더라, 누구였더라 하고 외어보다가 비로소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북스피어 블로그에서 봤던 작가였어요 ㅎㅎ !!! 영화의 물결을 타고 판매량도 소소히 늘어나길 기대합니다 :)

  3. 언젯적..스컬리 2017.03.02 17:3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루한 독자였던.. 전... 별로 재미를 못 느꼈던 거 같아요..ㅋ




스페인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작년 초겨울이었다. 평소에 교류가 잦았던 건 아니지만 책을 만들어 먹고산다는 인연으로 모인 다섯 편집자들이 맥주를 마시던 자리에서다. 그중 한 명이 안달루시아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래, 헤밍웨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는 론다도 카잔차키스가 “들어갈 때 전율을 느꼈다”던 알함브라도 실제로 보면 꽤나 근사하겠지. 그런 정도였다. 가면 좋겠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이 소설 혹은 영화 속에서나 감상할 수 있는 곳. 그러다가 술잔이 서너 순배쯤 돌고 어지간히 불콰해지자 누군가 “그럼, 요 멤버로 같이 다녀오면 어때요” 하고 대뜸 물었던 것이다. 설 연휴에 휴가를 이어 붙이면 괜찮지 않겠냐면서. 이런 거, 다들 한 번쯤 겪어보셨을 줄 안다. 술자리에서 별안간 여행계획이 세워지고 왁자지껄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지만 다음날 해가 뜨면 서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고 말아버리는 경우 말이다.


하지만 술자리 발언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인간이 좌중에 속해 있다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이튿날 도착한 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지요? 스페인 여행을 기대하며 잠도 짧게 자고 사무실에 나와 항공권 검색을 해봤습니다. 현재 가장 저렴하게 나온 상품을 아래에 적어둡니다. 이와 상관없이 먼저 100만원씩 송금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각 항공사별로 비교해 놓은 금액을 마주하며 나는 살짝 웃었다. 이 사람, 추진력 하나는 정말이지 발군이구나. 편집 기획도 이렇듯 과감하니까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는 거겠지. 그래도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어서 도착한 메일은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음식과 문화에 홀딱 반한 소설가 천운영 씨가 연남동에 스페인 전문식당을 준비 중인데 마침 기회가 닿아 우리에게 전문가적 가이드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여행은 기정사실이 됐고 어, 어 하는 사이에 항공권 예약도 완료되었다. 이럴 때 스페인에서는 ‘케 세라 세라(될 대로 되라)’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나.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위한 모임 장소가 ‘라 메사 델 키호테(돈키호테의 식탁)’로 정해졌을 즈음 나는 출연하는 라디오의 한 달 치 책 소개 분량을 미리 녹음하고 이런저런 강의 일정도 조정해 둔 상태였다. 심지어 칼럼도 앞당겨 썼다. 틈틈이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도 읽었다. 그러나 엿장수가 아닌 이상 늘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복병과 조우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 소식이 알려진 건 모임 전날이었다. 함께 여행을 떠나려던 편집자들이 몸담은 출판사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일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한 명은 세그웨이인가 뭔가를 타고 까불다가 팔이 부러졌다. 송인의 직격탄을 맞은 이가 “음, 저는 아무래도 빠져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 팔이 부러진 이도 어렵겠다는 뜻을 전했다.


남은 세 사람이 모여서 “이 판국에 스페인은 무슨 얼어죽을, 출판사나 잘 건사하자”며 술잔을 기울이던 자리에 여행사 대표가 동석했던 건 우연이다. 우리가 스페인에 가려던 딱 그 시기에 그는 여행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답사를 갈 요량이라고 했다. 별 생각 없이 “무슨 프로그램인데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좀 뜻밖이었다. “유럽 책방 기행인데요.”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투어하는 단체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운영하다가 문득 서점을 둘러보는 코스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한다. 독일의 ‘메이어체 서점’과 네덜란드의 ‘부컨들 도미니크넌 서점’과 벨기에의 ‘트로피슴 라이브러리’와 영국 ‘런던의 돈트 북스’, ‘옥스퍼드의 블랙 웰’, 책 마을 ‘헤이 온 와이’를 들르는 일정이란다. 그는 삼합을 씹으며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할지(우물우물), 여행사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면(우물우물), 신청할까요?” 하고 물었다. 메이어체 서점은 처음 듣지만 부컨들 도미니크넌 서점과 트로피슴 라이브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BBC에 소개되면서 오로지 서점을 보기 위하여 해당 국가에 가기도 한다는 곳 아닌가. 사람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내가 가고 싶었다.



“남은 요 멤버로 같이 다녀오면 어때요”라는 문자가 온 건 다음날이었다. 어차피 일정은 빼두었고 경비도 비슷하니 추진해 보자는 얘기였다. 여행사의 젊은 사장 입장에서도 직접 책을 만들어 파는 이들이 동행하면 좋겠다고 했단다. 본인 회사에서 확보한 항공권이 있고 직거래하는 호텔을 통해 숙박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때 내가 했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송인 부도로 출판사가 어렵다느니 대출을 받았다느니 하고 징징거렸던 내가 유럽 여행씩이나 가면 동종업계 종사자들과 독자들이 과연 어떻게 쳐다볼까. 곱게 보진 않겠지. 아직 먹고살 만한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고. 하지만 열흘에 걸쳐 유럽의 서점들, 위에서 거론한 곳을 포함하여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서점과 동네서점을 돌아보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다녀오길 백번 잘 했다고 생각한다. 적잖은 비용이 들었지만 그만큼 내가 원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영감과 그 책을 매개로 독자들과 즐겁게 노는 데 도움이 될 이벤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의 서점에 대한 단상을 여기에 읊조리기에는 지면이 모자라니까 그건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써보도록 하겠다. 다만 지금 막 떠오른 이벤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하나쯤 자문을 구해보고 싶다. ‘특색 있는 서점’+‘장르문학 관련 유적지’를 탐방하는 열흘간의 유럽 투어 프로그램을 출판사에서 만들면 독자들이 좋아할까. 예를 들어 아침에는 런던의 여행전문 스탠포드 서점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베이커 스트리트에 있는 셜록홈즈 박물관을 둘러보는 식으로 말이지. 투어 중간에 북스피어에서 출간한 소설의 저자를 만나거나 소설 속 장소를 구경할 수도 있겠고. 대략 올 가을쯤 진행해 볼 요량이다. 비용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분명 재미있을 테니 어디까지나 ‘케 세라 세라’적인 심정으로 호응해 주시면 고맙겠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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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릴리안 2017.02.16 12:20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놔~ 우리 쏴장님.
    이런 염장질 이벤트(제가 처한 상황으로 봐서)를 구상하고 오셨다니...
    정말 근사할 것같아요. '동그라미' 문제만 없다면 ㅎㅎ.
    아..아주머니 또..또 오셨어요? 하신다해도, 투잡을 뛰어서라도 '가고픈 저 이벤트' ^^

  2. 릴리안2 2017.02.16 12:58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카찬차키스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오타는 못보는 성미라서요 ㅎㅎㅎ교정볼 때 가고싶은 1인

  3. 2017.02.16 13:0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4. 책도락가 2017.02.16 21:23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베이커스트리트 근처에는 멋진 서점 <던트북스>가 있지요. ^^ 셜록홈즈박물관을 나서서 조금 걷다가 만난 던트북스에서 행복을 건졌습니다. 서점기행... 완전 좋아요^^ <유럽의 명문서점> 읽으면서, 패키지여행을 싫어하는 저이지만, 이런 패기지투어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찬성, 찬성, 완전 찬성!
    추신 : 스페인은, 론다도 세르반테스의 도시도 좋지만, 북부도 좋답니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팜플로나, 순례자의 역사가 담긴 레온과 부르고스. 인생의 어느날에 꼭, 마포 김사장님도 가시길 기원합니다.

  5. 이리나 2017.02.17 11:0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유럽 책방 투어라니!!!
    언제쯤, 얼마 정도의 비용으로, 며칠간 가게 되느냐고 득달같이 물어보고 싶은 여행이네요.
    뽐뿌질을 계획적으로 하려면 지금도 결코 이르지 않아서 말이죠. ㅎ

  6. 체체 2017.02.17 14:23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당장 다음주에 출발한대도 어떻게든 갈사람 여기 하나 있습니다.

  7. 구가모 2017.02.17 23:0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기회가 된다면 저도 꼭 가고싶습니다^^

    • 마포 김사장 2017.02.20 02:00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비용과 몇 박이냐가 관건일 텐데
      유럽이니까 적어도 열흘은 돼야 할 것 같고
      그러면 사백은 들겠죠.
      이 정도를 감당할 형제자매님들이 얼마나 될지...(고민고민)

  8. 언젯적... 스컬리 2017.03.02 17:3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언제하실 거에요... 적금 들 계획 세워야지


1인 출판 스타트업 강의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그러니 주최측에서 "너도 놀지 말고 홍보 좀 하"란다. 모객이란 게 무턱대고 어서옵쇼적 맨트만 늘어놓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의 참신+성의, 가 필요하다.


한데 지난 몇 년 동안 두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강의 시작을 알리며 써먹을 만한 문구는 죄다 써먹어버려서 이제 참신 그딴 거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탈탈 털고 비틀어도, 없다. 고민 끝에 주최측은 뭐라고 홍보하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이렇게 써 있다.


2017년엔 꼭 출판 창업 하겠다고 마음 먹으신 분들 계시나요? 1인출판 전문가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가 도와드립니다. 창업 준비부터, 기획, 편집, 제작, 마케팅까지! 한 큐에 배워보세요.


★ 무려 11기, 최장수 인기 강의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최장수 인기 강의라니, 어디선가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만 당장 나도 이렇다 할 멘트가 없는 바, 이번에는 대충 넘어가는 걸로. 모쪼록 형제자매님들도 그러려니적 자세로 신청해 주시길.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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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에스비에스에서 방영한 <아빠의 전쟁>이 꽤 화제인 모양이다. 나도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니고 지나다가, 슬쩍 보긴 했다. 거기에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끄는 라테파파들이 있었다. 배우 윤상현씨의 내레이션에 따르면 스웨덴 아빠들이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에 대략 다섯시간 정도라고 한다. 서너시 퇴근과 육아휴직 같은 사회적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한 덕분이겠다. 한국 아빠들이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고작 육분이란다. “아빠에 관해 생각나는 대로 그려 보세요라는 선생님의 주문에 스웨덴 초등학생들은 내가 매달릴 수 있는 튼튼한 팔뚝을 가진 아빠를 그렸다. 한국 초등학생들이 그린 건 소주병을 붙잡고 티브이를 보거나 잠자기 바쁜 아빠.

 

방송을 시청한 이라면 한번쯤 자신의 아빠를 떠올렸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튼튼한 팔뚝을 가진 아빠였던가 잠자기 바쁜 아빠였던가. 아닐까. 나는 떠올렸다. 아빠와 아버지의 경계가 희미하던 그때를.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칼국수를 팔았다. 다른 건 안 팔고 오로지 칼국수만 팔았다. 지금은 사라진 미도파백화점 옆 골목에 있는 시장통이 일터였다. 장사를 시작할 때 아버지가 물었다. “왜 하필 칼국수지?” 답은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밀가루 음식을 싫어한다. 가난해서 주야장천 수제비만 먹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햄버거나 라면을 먹으면 밥 놔두고 왜 그런 걸 먹냐며 혀를 끌끌 차시곤 했다.

 

나는 딱 한번 엄마의 칼국수 가게에 간 적이 있다. 조흥은행 통장과 도장을 가져오라는 호출을 받고 부리나케 뛰어갔었다. 급하지 않았다면 내가 갈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번듯한 가게가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검은색 돌에 대충 시멘트를 발라 만든 두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여력이 있어도 너무 좁아서 사람을 두고 쓰기는 어려워 보였다. 앞뒤로 놓인 의자에는 다닥다닥 붙으면 여덟 명쯤 앉을 수 있을 듯했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많았다. 그 옆에서 나도 칼국수를 먹었다. 엄마가 만든 칼국수는 처음이었는데 맛이 어땠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김이 펄펄 나는 솥단지 두 개와 실수로 저 솥을 툭 쳐서 엎어지면 위험하겠다고 걱정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우리 집안의 권력관계가 역전된 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버지의 실직이 이유였다. 그 전까지는 집에서 아버지와 마주칠 일이 없었다. 오후에 출근해서 새벽에나 돌아오셨으니까. 환한 대낮에 집에 있는 아버지는 낯설었다.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아버지는 더 낯설었다. 조만간 중동으로 가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인지 쿠웨이트인지 자리가 나면 곧장 출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싫은 건 아니지만 마주치기가 어색했던 나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독서실에 갔다. 거기서 시시한 소설책을 읽다가 자정을 넘겨 집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뜻밖의 광경을 마주한 건 중간고사가 시작된 어느 날의 일이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그래도 시험공부를 한답시고 독서실에 앉아 있던 나는 그날따라 귀가가 늦었다. 새벽 두시가 넘어 현관에 들어서려는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라디오를 틀 사람이 없는데. 심지어 따라 부르고 있다. 현관문을 살짝 열고 안을 엿보았다. 마루에 커다란 나무 판때기가 보였다. 아버지는 그 위에서 밀가루를 반죽하시느라 분주했다. 조그만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메들리의 가사를, 도무지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음정과 그에 뒤지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박자로 조그맣게 읊조리면서. 흥얼흥얼과 드르륵드르륵은 내가 들어서자 잠시 멈췄다. “, 왔냐.” 겸연쩍은 얼굴로 아버지는 웃었다. 자초지종은 간단했다. 기계로 뽑은 면을 한사코 마다하던 엄마가 인건비 때문에 고민하자 아버지가 그걸 해결해 주겠다며 나선 거다.

 

참고로 우리 집은 방이 두 개뿐이었다. 부모님 방과 우리 형제가 자는 방. 책상은 마루에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마저 보다가 잘 요량으로 아까 읽던 책을 펼쳤다. “시끄러우면, 끌까?” 아버지가 물었을 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시시한 소설이나 읽을 거니까. 한석봉 모자도 아닌 마당에 이 무슨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씨를 쓰거라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란 말인가. 당신은 또 이런 것도 물었다. “출출하면, 라면 끓여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밤라면을 먹었다. 계란이랑 파를 왕창 넣어서. 후루룩거리는 소리 외에 이렇다 할 대화는 없었다. 어색한 와중에도 카세트테이프는 신나게 돌았다.

 

아버지의 밤샘 아르바이트는 이후로도 몇 달간 이어졌다. 부엌에 밀가루 포대가 쌓이는 만큼 밀대를 미는 속도도 빨라졌다. 엄마는 부쩍 손님이 늘었다며 기뻐했다. 기계로는 낼 수 없는 손맛 덕분이라고 아버지를 추켜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가 수다스럽게 느껴진 건 내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박장대소 분위기는 오래가진 않았다. 가게가 잘되자 임대를 주던 주인이 그만 비워달라고 했단다. 애당초 계약서 따위를 썼을 리 만무하다. 나는 잠결에 두 분이 말다툼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시장으로 뛰어가서 가게를 때려 부수겠다며 망치를 찾는 아버지를 엄마가 말리는 소리였다. 하긴, 나라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돌이켜보면 넉넉하진 않아도 단란했던 시절이다.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덜 벌고 덜 썼지만 매일매일이 뽕짝 메들리 같았다. 그래서 <아빠의 전쟁>을 마주했을 때 반사적으로 하얀 가루를 펄펄 날리며 밀가루를 반죽하느라 분주했던 아빠를 떠올린 것이다. “시끄러우면, 끌까?” 하고 물어보는 사려 깊은 아빠와 출출하면, 라면 끓여줄까?” 하고 물어보는 다정한 아빠도. 스웨덴 흉내라도 내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정비가 난망한 지금, ‘아빠의 전쟁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런 다정함과 사려 깊음 같은 게 아닐까. 한편으로 생각한다. 나는 어떤 아빠가 될 수 있을까. , 그러려면 일단 결혼부터 하는 게 순서겠다. 갈 길이 멀구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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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컬리 2017.02.05 11:5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러게요.. 갈 길이 머시네요~

    우리 아버지는... 어렸을 때 내 삶의 중심이었죠.
    아버지랑 같이 놀아야 시시한 놀이도 신나게 바뀌었죠.
    우리 할아버지는 귀가시간에 8남매나 되는 자식들이 싹 사라질 정도로 엄하셨기에
    그 반동인지 몰라도 우리 아버지는 정말 다정하셨죠.

    지금 이 나이까지 아버지한테 책망하거나 혼내는 말씀을 들어본 기억이 없네요.
    (있었어도 심각하지 않아 기억이 안날수도.. ㅋ)

    탄생시라고 들어보셨나요?
    전 있답니다. 제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가 쓰셨대요.

    어린 조카들이 밤에 울면 시끄럽다고 하시던 분이 제가 태어나 밤낮이 바뀌어 밤에 울어제끼는대도 이불 푹 뒤집어 쓰고 주무시며 아무불평도 안하셨대요. ㅋㅋ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사진이 취미셨는데, 늘 저를 모델로 많이 세우셨죠.
    덕분에 촌시런 어린 시절 사진이 많아요. ㅋ

    5-6학년 쯤이었나? 그때 286컴퓨터가 막 나오던 시절, 아버지가 큰 맘 먹고 새 컴퓨터를 장만하셨죠.
    그때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게임을 서비스로 깔아줬었는데, 그 날부터 아버지는 퇴근해서 저녁 먹고 나면 그 게임을 시작하셨어요. 우린 뒤에서 구경했었는데, 흑백화면이었음에도 칼날에 왕자가 두토막나면 정말 손이 움찔할 만큼 끔찍했어요!
    아버지가 공주를 구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갔던 건 게임을 시작한지 1-2달 후였던 거 같아요.
    정말... TV보다 흥미진진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

    여름이면 아버지랑 동네 근처 가까운 개울가에 텐트 쳐놓고 라면 먹고 튜브타며 노는 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어린이날은 꼭 어디든 데려가셨고, 크리스마스날엔 온 산을 누비며 크리스마스트리할 나무를 찾아와 꾸미면 그 밑에 선물이 꼭 놓여있었는데, 정말 어디에 숨기셨는지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절대 찾을 수도 없었어요.



    그 당시 우리집은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집이어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떄는 밤에 야간자율학습 끝나면 오가기가 나빴어요.
    그때는 우리 아버지가 아직 차가 없을 때라서, 야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아버지가 꼭 데리러 오셨죠.
    그떄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다 생각나진 않지만, 봉고차를 타고 귀가하던 친구들은 아버지와 내 걷는 뒷모습이 똑같다며 부러워했었죠.

    지금도 아버지는 회사 동아리 활동이지만 정기적으로 사진전을 여는 사진작가시고,
    수필 동아리 활동을 하시는 어엿한 등단 작가이시며,
    세 개나 되는 합창단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시는 음악가이시고
    (원래 꿈이 성악가셨죠)
    70이라는 나이에도 어느 작은 불교신문사의 편집국장이시죠.

    지금도.. 친정집에 놀러가면 아버지는 꼭 제게 당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고, 당신이 쓰신 글을 읽고 평을 해달라 하시죠.
    바쁘다고 오랜만에 전화하면 너무나 좋아하시고, 친정 집 문 들어서면 서로 포옹해주고, 엄마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가까이 사는 저 부르라고 하신다네요.


    제가 아버지의 딸인 건 행운이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지금처럼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재미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2. 최균해 2017.02.08 22:0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버지란 단어는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사는 것이 힘들고 고달플수록 단란하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생각나고~ 추억의 중심에서 대들보 역할을 해주셨던 아버지른 더 조심스럽고 아련하게 떠올리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돈을 벌고 누군가를 부양해야하는 위치가 되고 보니
    아버지란 단어가 참 사무칩니다~ 철이 좀 든 거라 위안을 해봅니다~
    문득 아버지께 안부전화나 한통 해드려야지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네요~

  3. 서울한량 2017.02.10 00:0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가끔 김사장님 글을 읽으면 '이거다' 싶은 단어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위의 글에서는 미도파 백화점이라던가, 조흥은행처럼 이제는 사라진 대상의 정확한 명칭이 나오는데. 그 시대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고 반가운 마음도 들어서 일석이좁니다. 말랑말랑한 기분으로 긴장풀고, 더러 나의 옛날도 떠올리면서 읽게 된달까요. 글에서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뭐,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송인서적 관련해서 인수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앞으로의 일이 어찌될지 모르니 계속 응원합니다. 송인서적 피해입은 출판사 책들을 모아서 약간의 냉소와 씁쓸한 마음을 꾹꾹 눌러담은 <大송인서적전> 을 하면 어떨까 한번 상상해봤습니다만, 훨씬 좋은 쪽으로 풀리는군요 :) 모쪼록 잘 마무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마포 김사장 2017.02.10 09:2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그러게요. 저도 어제 인수자가 나타났단 얘길 들었는데
      글쎄, 그걸 누가 인수할까 싶기도 해서
      좀 알쏭달쏭.
      두고봐야 될 듯해요. 어떻게 귀결될지...

  4. 북클럽 2017.02.17 11:58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늘은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번, 또 김사장님 글에서 한번, 눈물이 비죽비죽 하는 날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