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전국제패

from 이벤트 2016.08.26 10:16


내가 김탁환 작가를 처음 만난 건 꽤 오래 전, 지금으로부터 십사오 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어느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단행본과 두 달에 한 번씩 잡지를 만들었다. 편집자라고는 나 혼자여서 늘 야근을 해야 할 만큼 업무가 많았고 월급은 적었지만 솔직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필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이 즐거웠으니까. 나에게는 전부 연예인 같은 존재였다. 그들을 만나 원고를 받고 의견을 말하고 고치고 수정하고 또 고쳐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뭐라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다만 잡지를 기획할 때는 늘 새로운 필자가 모자라 애를 먹었다. 진부한 주제를 참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유려하게 써 줄 수 있는 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우연찮게 방문한 곳이 퍼슨웹이다. 스스로를 문화기획집단이라고 했다. 인터뷰 전문 웹진을 만든다. 만 명을 인터뷰하는 게 목표라고 들었던 것 같다. 이를 토대로 몇몇 출판사와 함께 책도 기획했다. 공연에도 관여하는 듯했다. 하여간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벌이느라 그곳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언제 가도 실컷 퍼마실 수 있는 먹물들의 사랑방’이라는 것이, 내가 받은 인상이었다. 김탁환 작가는 퍼슨웹의 창립 멤버였다.


그 뒤로 십여 년에 걸쳐 퍼슨웹 행사를 통해 간간이 김탁환 작가를 만났다. 그 사이에 나는 창업을 했고 그는 수십 편의 소설을 썼다. “북스피어에서 소설을 내고 싶다”는 얘기를 들은 건 굉장히 추웠던 겨울, 한밤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쓰기만 하면 내겠다는 큰 출판사들이 수두룩 빽빽할 텐데 왜 하필 북스피어에서 내겠다는 건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나름대로의 스크린쿼터제 같은 게 아닐까 짐작했을 따름이다. 나는 자주 김탁환 작가의 작업실에 들러 앞으로 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가면 그는 따듯한 원두커피를 내려주었다. 오랫동안 김탁환의 소설을 읽어 온 독자로서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세월호에 관해 쓰고 싶어 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어디서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민간 잠수사에 관해 이미 어느 정도의 구상이 끝나 있는 듯했다. 지난 해 ‘조선의 조운선 침몰 사건’을 소재로 <목격자들>을 출간하기도 했지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소설가로서 이 얘기를 딱 부러지게 매듭지어 두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신의 소설을 읽고 사람들이 좀 더 화를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 화를 내나.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만 할 거냐고 윽박지르는 언론에게. 믿기지 않을 만큼 무능하고 뻔뻔한 정부와 관료들에게.


그는 마감을 잘 지켰고 굉장히 빨리 썼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편집자의 피드백을 대하는 태도였다. 나는 그동안 많은 필자들의 원고를 받아 보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글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내는 필자도 여럿 보았다. ‘만약 내 글을 한 글자라도 고치면 싣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태도를 비난하거나 잘못됐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니까. 다만 필자가 자신의 원고에 애착을 가지는 딱 그만큼 편집자 역시 편집자의 역할이 있다고 여길 뿐이다. 김탁환 작가는 편집자의 피드백을 결코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이십 년차 소설가로서 그렇게까지 편집자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이는 경우도 흔치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대관절 어땠는가. 첫 평가는 좋지 않았다. 지난 달 <거짓말이다> 독자교정(에 관해서는 ‘서점 직원을 관두고 소설을 쓴 작가’ 참조)에 왔던 독자는 “김탁환 소설이라길래 독자교정에 참가한 건데 만약 세월호 얘기인 줄 알았으면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서 ‘세월호 피로감이 크긴 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초판은 또 몇 부를 찍어야 하나가 고민이어서 그날 취재차 왔던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한테 솔직히 내 속을 다 까고 물어보았다. “제가 보기에 3,000부에서 5,000부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오랜 출판담당 기자의 촉으로 볼 때 어떨 거 같으세요?”라고. “나도 정말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둘이 앉아서 심란한 얼굴로 담배만 뻑뻑 피웠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7월 마지막주 내내 걸어놓았던 온라인 서점 예약판매 상황은 형편무인지경이었다. 매일매일 바뀌는 예스24의 세일즈 포인트는 제자리걸음이었고 다른 온라인 서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 기간 중 나는 9월에 출간할 소설의 독자교정 행사차 캐나다에 가 있었기 때문에 더 애가 탔다. 하필이면 전화도 안 되고 인터넷도 원활하지 않은 곳이어서 글 하나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페이스북이든 블로그든 어쨌거나 한 줄이라도 더 써서 판매를 독려했더라면’ 하고 뒤늦게 후회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런데 <거짓말이다>의 출간일이었던 8월 5일(은 김관홍 잠수사의 49재이기도 하다)을 기점으로 상황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은 내가 직접 얘기하기보다 관련 기사를 읽어보는 편이 나을 듯하다. 


(1) [뒤끝뉴스] '거짓말이다' 주문 쇄도는 문재인 추천 때문? (한국일보 8월 8일) 


(2) 진심 통했나… '거짓말이다' 판매 호조 (경향신문 8월 17일). 


그리고 마치 이에 호응하듯 많은 독자들이 책 표지 뒤쪽에 이스터에그 삼아 인쇄한 문구를 SNS에 올려주었다. 그중에는 세 개의 문구를 다 모은 이들도 있었다.




이럴 때 편집자가 느낀 희열이라고 할지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뭔가 그럴듯한 말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찾지 못했다. 9월 첫 주부터 전국을 돌며 여러 독자들과 만나는 동안 찾아보겠다. 실은 책이 나와서 이런저런 이벤트를 할 때, 특히 오프라인 독자모임이나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할 때는 매번 서울 이외의 지역 독자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곤 해서 아래의 제목처럼 전국의 특색 있는 작은 서점을 돌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볼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가져볼 요량이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9월 1일(목요일)_광주 동네책방 숨 오후 7시

9월 2일(금요일)_통영 봄날의 책방 오후 8시

9월 3일(토요일)_부산 다대 도서관 오후 2시

9월 4일(일요일)_괴산 숲속작은책방 오후 5시

9월 5일(월요일)_대구 커피는책이랑 오후 7시 30분

9월 6일(화요일)_경주 노닐다책방 오후 7시

9월 7일(수요일)_일산 미스터버티고 오후 7시


‘서울 이외의 지역 독자 분들과 조촐하게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많이 오시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게 제 생각이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책과 서점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채널예스)


덧) 아울러 원정독자 매우 환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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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영주 2016.08.26 13:3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일주일 내내 운전에서 빵터졌습니다. ㅋㅋ 통영이나 부산쯤에서 "나도 함께 갑시다." 하는 암행어사의 종자들(암행어사를 보아 암행어사라고 하였는데 암행어사가 아니라고 하시면...대장금흉내... 고산자라고 하시니 고산자라고 하겠습니다)이 늘어날 것으로 아뢰오... ...

  2. 지이 2016.08.26 18:5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작가님과 대표님, 두 분 모두 정말 대단하세요. <거짓말이다>는 의미가 남다르니, 전국 제패를 넘어 세계 제패까지 하시길요. 세계 각지 여러분, 항공권과 숙박 준비되시면 연락 주세요!

    • 마포 김사장 2016.08.27 19:1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꽤 힘들겠지만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전국제패. 정말, 거짓말이다의 판권이 다른 나라에도 팔려서 세계제패 같은 거 하면 좋겠네요...



그 아이는 내 짝궁이었다. 성혜라는 이름이다. 그림을 잘 그렸다. 정물화든 수채화든 뭘 그려도 항상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다. 피아노도 잘 쳤다. 음악 시간에 필요한 반주란 반주는 전부 도맡아 했을 정도다. ‘어릴 때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아 감각이 뛰어나며 누구에게나 친절한 부잣집 아이’라는 것이 내가 그녀에게 받은 인상이었다. 나는 성혜의 재능이 부러웠다. 왜 내가 그린 그림은 선생님의 눈에 들지 못할까. 왜 나는 반 아이들 앞에서 여봐란 듯이 반주를 맡을 수 없는 걸까. 이 정도면 나도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칭찬은 늘 성혜 몫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뭘 그런 걸로 시샘씩이나 했는지 의아하지만 그땐 그랬다.


성혜의 잘함과 나의 잘함은 차원이 다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나는 성혜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애지중지 하는 줄 뻔히 아는 학용품을 숨겨놓고 시치미를 떼거나 뾰족하게 갈아놓은 연필로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쿡쿡 찌르기도 했다. 그때 차라리 아이답게 분통을 터뜨려 주었더라면 좋았을걸.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속상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친절한 말을 해주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뭐’ 하고 한없이 인자한 어른이 까마득하게 어린 꼬마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로 방긋 웃으면서. 그 어린애답지 않은 태도에 나는 더욱 심사가 뒤틀렸다. 그럴수록 괴롭힘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이래도 화를 안 낼 거야? 이래도?’ 요즘 같으면 학원폭력으로 신고를 당해도 할 말이 없었으리라.


그러다가 딱 한 번, 성혜가 무섭게 화를 낸 적이 있다. 미술 시간이었다. 각자 가지고 온 과일을 책상에 두고 그림을 그렸다. 한데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됐는데도 성혜는 계속 그림에 열중해 있었다. 이제 그만 하라고 내가 한마디 했다. 못 들었는지 그럴 필요는 못 느꼈는지 성혜의 붓은 멈출 줄을 몰랐다. 순간적으로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 괘씸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면 책상 위에 놓인 사과를 한 입 깨물어 먹어버렸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때 성혜가 나를 보던 경멸에 가까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애써 눌러놓으려는 듯한 신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낯빛이 창백해진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이윽고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며 내가 베어 물었던 사과를 집어던졌는데 하필 그게 교탁 위에 놓인 화병에 정통으로 맞은 거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나더니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은 순식간에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사과를 집어던진 당사자의 커다란 눈에서는 그 큰 눈만큼이나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소동은 담임선생님의 등장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나를 때리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혀를 끌끌 차며 “사내새끼가” 어쩌구 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짝궁을 바꿔주었다. 나와 성혜 말고도 반 전체의 짝궁 교체가 단행되었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그 뒤로 학년이 바뀔 때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한 마디 말도 걸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듬해, 누군가를 통해 성혜의 생일 모임에 와달라는 쪽지를 받았다. 이제는 같은 반도 아닌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였다. 다른 반이라는 이유보다는 역시 지난 번 일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는 더더욱, 나는 요령 있게 사과하는 데 서툴렀다. 그런 주제에 만약 가게 되면 선물을 뭘 살까 궁리한 걸 보면 이만저만 뻔뻔한 게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방과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야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집에 계실 리 없고 그날따라 동생도 귀가가 늦었다. 책상 서랍을 뒤지고 소파 밑을 훑고 심지어 아버지의 겨울 코트 주머니를 뒤져 마련한 돈은 고작 오백 원 남짓. 연필 한 다스도 살 수 없는 돈이었다. 빈손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가 지금은 성혜와 한 반이 된 아이들이 집으로 나를 부르러 왔을 때 나는 못 가겠다고 했다. “왜?”, “돈이 없어.” 얼마나 있냐고 묻기에 오백 원뿐이라고 했다. 그중 태현이라는 친구가 기억난다. 키가 작았고 싸움을 잘 했다. 근처 ‘선물의 집’에 가면 그 돈으로도 살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못 이기는 척 따라가 보니 브로치였다. 분홍색 자전거 모양으로 포장해 달래기도 민망할 만큼 작았다. 내가 ‘그래도 그렇지 이걸 어떻게’ 하는 표정을 짓자 태현이는 “괜찮아, 새끼야” 하고 내 머리를 툭 치는 시늉을 했다.


성혜네 집은 내가 막연히 짐작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성혜와 꼭 닮은 어머님이 차려주신 조촐한 생일상 앞에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껐다. 이제 각자 준비한 선물들을 꺼내놓을 순서가 되었다. 연필과 공책 세트를 비롯하여 직접 만든 카드와 곰 인형 등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펼쳐졌다. 내 차례였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태현이가 내 손에 있던 포장된 브로치를 빼앗더니 “이건 특별한 선물이니까 너 혼자 있을 때 풀어 봐” 하며 성혜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주위에서 가벼운 야유가 일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슬쩍 넘어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다행이다. 나중에 성혜한테 쪽팔릴 일만 남았다.


다음 날. 수업은 한참 전에 끝났다. 나는 청소를 마치고 옆 반과의 축구시합에 늦어 허겁지겁 나가던 참이었다. 사층 복도 저쪽에서 성혜가 보였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묵묵히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는데 마주 걸어오던 성혜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나간 강변에서 해 질 무렵 살랑 부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라 당황한 와중에도 그 아이가 입은 하얀색 스웨터 위로 왼쪽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포장해 달래기도 민망할 만큼 작은 분홍색 자전거였다. 나는 계속 걸었다. 운동장에서 공차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슴푸레 들려왔다. 지금으로부터 스물 몇 해 전, 어느 봄날 오후 무렵의 일이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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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영주 2016.08.25 17:13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포카리스웨트가 마포 김사장님을 표절한 거였......성혜 언니는 마포 김사장을 브로치 꽂을 때 잘못해서 바늘에 찔릴 때마다 기억했을 겁니다. 주성치 서유기의 한 장면 심장에 남았던 어떤 것처럼.

    그나저나 이번에두 제목 두 글자일 줄 알았는데 의외......

    아 맞다.
    이것도 좀 보시 ;;;


    http://m.ch.yes24.com/article/view/31544

단식

from 이런저런 이야기 2016.08.24 15:43


김탁환 작가는 마음이 편치 않은가보다.

내내 고민하더니 기어코 해야겠단다.

그것도 이번 주 일요일, 평일도 아니고 일요일에 말이지.

이 대목에서 “네, 그럼 알아서 잘 다녀오시던가”

하고 나 혼자 입을 싹 씻을 수는 없잖은가, 의리 없게.


해서, 나도 하기로 했다.

일요일에는 빨래도 해야 하고,

밀린 드라마도 봐야 하고,

그리고 또...

하긴 뭐 별로 할 일도 없나.


나 따위가 동조해 봐야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싶은 생각도 아니 드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거짓말이다> 만들고 안 팔릴까봐 초조해하고 있을 때

한두 분의 응원도 큰 힘이 되었던 걸 기억한다(눈물 날 정도로).

그런 기분으로 동참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거 같이 하실 형제자매님 계신가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동조단식!>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두 끼 정도 굶는다 생각하시면 될 듯.


알아보니 특별한 절차는 없고

현장에서 동조단식 등록하면 된다고 합니다.

함께하실 분은 아래 댓글 남겨주시고

이번 주 일요일(28일) 오전 10시 반에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만나십시다!



덧) 그날 오신 형제자매님들께는 특별히

제 망한 소개팅 얘기를 해드리겠음. 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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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영주 2016.08.24 17:2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ㅠㅡㅠ 원전 관련 시사회가 있어서...다들 잘 다녀오세요. 근처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정말 근처. ;; )

  2. 문지 2016.08.27 15:2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내일 광화문역으로 나가겠습니다!!